전편 '약속'
그러니까, 나카노 본인도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어째서 금요일 저녁, 냄비전골을 같이 먹자고 우기던 앞집 여대생이 지금 자신과 번화가의 펀치 머신 앞에 있는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앞집 여대생과,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와 말이다.
그 날은 무조건 자신과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우기던 그녀가 갑자기 하교길 집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미안! 거절할 수 없는 일이 생겨버렸으니까' 하며 시간을 내달라고 말해왔을 때, 나카노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몇 번인가 "아아..." 하고 적당히 응답해 주는 사이 어느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어쩐지 좀 느끼해 보이는 '그 남자'는 앞집 여대생에게 확실히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따라왔을 뿐인 나카노에게 노골적으로 '이건 뭐야?' 하는 싫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나카노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어서 이 지루한 동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
"너, 고등학생이라고? 전에 깡패한테서 구해줬었다면서."
"............."
"아, 응! 나카노라고 했잖아, 나카노가 도와줬어."
"키도 작은데..무섭지 않았어? 실컷 얻어터진 건 아니고?"
"나카노는 강해! 몇 명이나 되는 녀석들을 다 쫓아냈다구. 그렇지, 나카노?"
".............."
"어쨌든 고맙다, 고등학생 치고는 꽤나 분발한 모양인데."
"무슨 소리야? 나카노는 강하다니까! 그리고 내가 폐끼친 거야!"
앞집 여대생은 뭐가 그리 미안한지 계속 나카노의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이었다. 그까짓 저녁, 먹지 않아도 나는 상관 없는데. "안 돼! 꼭 먹어야 돼! 꼭 내가 냄비전골을 해줄 테니까! 두 시간이면 되니까, 응?" 하고 우기던 그녀의 말을, 역시 듣는 게 아니었다. 이 여자와 얽히면 귀찮은 일 뿐이야. 나카노는 펀치머신 앞에서 폼을 잡고 있는 남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잘 보라구, 어디!"
삐리리 하는 조잡한 전자음과 함께 펀치머신의 바가 올라왔다. 남자는 여자를 향해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팔을 크게 뒤로 뻗었다가 뻥!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그 박력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숨을 죽이고 시선을 집중했다. 숫자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액정에 표시된 수치는 197kg.
"너도 해볼래?"
남자는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카노를 내려보았다.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적의와 , 유치한 과시욕. 너처럼 작은 놈이 뭘 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카노는 이런 어린애같은 감정싸움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눈 앞의 저 여자를 좋아한다던가, 그래서 나를 빨리 쫓아버리거나 망신을 주고 싶어한다던가 하는 것은 나카노에겐 별 상관 없었다.
"뭐, 그 체구로 제대로 주먹이나 날리겠냐만."
왜 이런 바보같은 곳에서 바보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놈과 함께 있는 걸까, 나는.
한 대 갈겨버리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 때, 나카노는 자신의 옆에 서있던 그녀가 슬며시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것을 느꼈다.
이 손길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 의미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처럼, 이 불편한 상황이 미안해서 어떻게든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
분명 그런 것이겠지.
이 여자는 그런 쓸데없는 데 마음을 잘 쓰니까.
"...내가 이기면 갈 거야."
"뭐?"
"이 여자랑 돌아갈 거라고."
"뭐???"
뻥!!!!!!!!!!!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펀치머신의 바가 뒤로 고꾸라졌다. 나카노의 주먹은 여전히 바의 쿠션에 꽂힌 채였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세 사람을 바라본다. 번화가 속의 이상할 정도의 적막 안에서, 펀치머신의 기계음만이 허공을 찢듯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남자는 입을 벌린 채로 숫자가 올라가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삐리리리리리- 싸구려 효과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리고 숫자가 멈췄을 때,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서 와-하는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2, 238kg............................."
"간다."
"기,기다려!"
당황한 남자가 손을 뻗었지만, 나카노는 자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느낌 탓일까, 그녀의 손이 조금은 뜨거운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의 손이 뜨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인파 속을 헤치며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나카노의 뒤에서, "맛있게 해줄게, 냄비전골." 하고 웃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nd
그러니까, 나카노 본인도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어째서 금요일 저녁, 냄비전골을 같이 먹자고 우기던 앞집 여대생이 지금 자신과 번화가의 펀치 머신 앞에 있는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앞집 여대생과,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와 말이다.
그 날은 무조건 자신과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우기던 그녀가 갑자기 하교길 집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미안! 거절할 수 없는 일이 생겨버렸으니까' 하며 시간을 내달라고 말해왔을 때, 나카노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몇 번인가 "아아..." 하고 적당히 응답해 주는 사이 어느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어쩐지 좀 느끼해 보이는 '그 남자'는 앞집 여대생에게 확실히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따라왔을 뿐인 나카노에게 노골적으로 '이건 뭐야?' 하는 싫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나카노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어서 이 지루한 동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
"너, 고등학생이라고? 전에 깡패한테서 구해줬었다면서."
"............."
"아, 응! 나카노라고 했잖아, 나카노가 도와줬어."
"키도 작은데..무섭지 않았어? 실컷 얻어터진 건 아니고?"
"나카노는 강해! 몇 명이나 되는 녀석들을 다 쫓아냈다구. 그렇지, 나카노?"
".............."
"어쨌든 고맙다, 고등학생 치고는 꽤나 분발한 모양인데."
"무슨 소리야? 나카노는 강하다니까! 그리고 내가 폐끼친 거야!"
앞집 여대생은 뭐가 그리 미안한지 계속 나카노의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이었다. 그까짓 저녁, 먹지 않아도 나는 상관 없는데. "안 돼! 꼭 먹어야 돼! 꼭 내가 냄비전골을 해줄 테니까! 두 시간이면 되니까, 응?" 하고 우기던 그녀의 말을, 역시 듣는 게 아니었다. 이 여자와 얽히면 귀찮은 일 뿐이야. 나카노는 펀치머신 앞에서 폼을 잡고 있는 남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잘 보라구, 어디!"
삐리리 하는 조잡한 전자음과 함께 펀치머신의 바가 올라왔다. 남자는 여자를 향해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팔을 크게 뒤로 뻗었다가 뻥! 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그 박력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숨을 죽이고 시선을 집중했다. 숫자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액정에 표시된 수치는 197kg.
"너도 해볼래?"
남자는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카노를 내려보았다.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적의와 , 유치한 과시욕. 너처럼 작은 놈이 뭘 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카노는 이런 어린애같은 감정싸움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눈 앞의 저 여자를 좋아한다던가, 그래서 나를 빨리 쫓아버리거나 망신을 주고 싶어한다던가 하는 것은 나카노에겐 별 상관 없었다.
"뭐, 그 체구로 제대로 주먹이나 날리겠냐만."
왜 이런 바보같은 곳에서 바보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놈과 함께 있는 걸까, 나는.
한 대 갈겨버리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 때, 나카노는 자신의 옆에 서있던 그녀가 슬며시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것을 느꼈다.
이 손길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 의미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처럼, 이 불편한 상황이 미안해서 어떻게든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
분명 그런 것이겠지.
이 여자는 그런 쓸데없는 데 마음을 잘 쓰니까.
"...내가 이기면 갈 거야."
"뭐?"
"이 여자랑 돌아갈 거라고."
"뭐???"
뻥!!!!!!!!!!!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펀치머신의 바가 뒤로 고꾸라졌다. 나카노의 주먹은 여전히 바의 쿠션에 꽂힌 채였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멈춰 세 사람을 바라본다. 번화가 속의 이상할 정도의 적막 안에서, 펀치머신의 기계음만이 허공을 찢듯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남자는 입을 벌린 채로 숫자가 올라가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삐리리리리리- 싸구려 효과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리고 숫자가 멈췄을 때,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서 와-하는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2, 238kg............................."
"간다."
"기,기다려!"
당황한 남자가 손을 뻗었지만, 나카노는 자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느낌 탓일까, 그녀의 손이 조금은 뜨거운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의 손이 뜨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인파 속을 헤치며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나카노의 뒤에서, "맛있게 해줄게, 냄비전골." 하고 웃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nd




















덧글
Raylene 2009/06/22 23:28 # 답글
남자 멋지당어휴 저런 남자의 보호를 받는 여자
넘 멋져영 어헝헝
니케 2009/06/23 08:17 #
아휴 어디 나카노같은 남자 업나 키는 상관업서!!!!!!!!!!!!!! 그런거 상관업다고!!!!!!!!! 크허험ㄴ어ㅓㅎㄱ헌ㅇ러헣헣허허허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엔피 2009/06/23 00:56 # 답글
멋진남자다.배워야해 요즘 남자들은...ㅠㅠ
니케 2009/06/23 08:18 #
배워야함다. 이 세상 남자들이여! 초식남에서 포식남으로 변신하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